인간은 단지 DNA 데이터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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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등록자 |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등록자』를 읽었다. 그의 책을 일주일 사이에 2권이나 읽게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사소한 변화』를 읽고 바로가기
그의 작품은 읽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전개도 빠르고 줄거리도 속도감 있게 치고 나간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등장인물 이름이 일본어로 되었다는 것뿐이다. 일본어 이름은 왜 이렇게 익숙해 지지 않지?
앞으로 당분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과 관련한 글을 종종 올릴 거 같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몇 권 더 된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책이 다시 역주행 하고 있다고 하니, 다들 아쉬움이 큰 모양이다. 더이상 새로운 책이 나올 수 없다면, 지금까지 나온 책을 읽는 방법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줄거리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린 미래의 모습 : 범죄 없는 사회를 향한 통제 사회
소설 속 일본 정부는 모든 국민의 유전 정보를 수집하여 범죄자를 즉각 특정 할 수 있는 완벽한(?)시스템을 구축한다. 현장에 남겨진 미세한 체모나 타액만으로도 범인의 얼굴 몽타주부터 건강 상태, 심지어 친척 관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범죄 없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국가가 국민을 감시하는 도구로 개인의 생물학적 정보인 DNA를 수집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한 사람 개인개인을 '생물학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인에게 '자유'는 없어진다. 안전이라는 명목아래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 진다.
설계자의 죽음과 뜻밖의 용의자
이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한 공동 설계자 가운데 타테시나 남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또 다른 설계자 가구라가 즉시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의 DNA를 이 완벽한 시스템에 입력하지만, 분석 결과 용의자는 엉뚱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 완벽한 시스템이 가리키는 용의자는 바로 가구라 자신이다.
추격전과 '플래티나 데이터'의 정체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가구라는 도주를 선택하고, 그 과정에 베테랑 형사 아사마는 맹렬히 그를 추적한다. 도주 과정에서 가구라는 이 시스템 뒤에 국가 권력층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시스템 별도로 작동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플래티나 데이터.
진실은 데이터 너머에 있다
가구라는 이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아사마 형사와 손을 잡고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과거에 맹신했던 인간을 데이터로만 판단해 왔던 생각을 내려놓고, 인간의 본질과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생각할 점들
인간은 DNA 정보일 뿐인가? : 물질인가? 정신인가?
작가는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번에 읽었던 『사소한 변화』와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은 물질의 집합일 뿐인가? 아니면 물질 이상인가? 처음에 가구라는 인간의 마음, 영혼 이런 것에 냉소적이다. 그의 아버지의 비극적인 사건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인간을 단지 DNA 정보로 이해하고, 마음이나 생각 등이 다 여기에 맞춰진 프로그램 정도로 생각한다.
유물론적 환원주의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을 점점 객체화 하고 과학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인간은 물질일 뿐이다. 그렇다면 감정, 마음, 영혼, 정신, 이런 것도 물질적인 어떤 작용의 결과지, 이것이 인간의 존재를 특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철학사에도 이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을 물질로만 이해하는 것에 반대하는 "관념론", "이원론", "실존주의", "현상학" 등이 있다. 물론 종교도 마찬가지다.
유물론에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이 관념론이다. 물질보다 정신, 의식, 이성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도 여기에 해당할 것 같다. 칸트, 피히테, 셀링, 헤겔은 세계를 물질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인식으로 보았다.
데카르트 이원론도 유물론에 반대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물질'과 '정신'은 완전히 독립된 두 개의 실체라고 한다. 정신이 물질로 환원될 수 없다.
실존주의는 물질적인 결정론을 거부하고, 인간 고유의 자유로움을 주장한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존재를 만들어가는 자유로운 존재다.
현상학은 인간의 정신이 물질을 어떻게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 들여다본다. 객관적 물질 세계를 절대화하는 유물론에 반대한다.
자유냐? 통제냐?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 안전이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신체정보를 국가가 수집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이 신체적 개인정보가 악용될 수 있고, 이것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개인의 고유함을 침범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힘을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복잡하고, 한 개인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통제를 허용해야 하는가?
막강한 통제국가냐? 아니면 최소한의 국가냐?
예술이냐 기술이냐?
진정한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 미학의 문제도 생각하게 만든다. 가구라가 냉소적인 이유는 도예가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이다. 예술의 혼을 다 쏟은 아버지의 작품이 단지 로봇들에 의해서 기술적으로 모방되어 시장에 팔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기술이 너무 정교해서 아버지 작품과 전혀 차이가 없다. 심지어는 원작가인 아버지마저 위작에 속고 만다.
가구라는 이 비극을 겪고 결국 예술도 인간의 마음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결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가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예술은 작가가 의식해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그 반대이다.
예술은 작가를 조종해 작품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다. 작가는 노예다."
결국 이 소설 내내 이 구조가 반복된다. 물질이냐? 정신이냐? 개인의 자유냐? 국가의 통제냐? 예술이나 기술이냐?
나가는 말
작가가 하고 싶은 말로 결론을 내보자. 비극적인 주인공 가구라는 자신이 범인으로 몰렸던 상황을 극복하고 이 시스템 뒤에 있는 실체를 깨달은 후, 과거의 생각을 바꾼다. 그는 마지막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흙을 빚고 굽는다.
작가는 인간성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물질을 뛰어넘은 정신의 세계,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 손으로 빚어내는 예술, 그리고 고유한 개인의 침해받을 수 없는 자유. 가구라는 이것을 선택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계속 경고를 받는다. 개인정보는 해킹당하고, 기술적인 통제와 감시는 생활 곳곳에서 나타난다. 나를 인증해야 하는 절차가 얼마나 복잡하고, 또 얼마나 쉽게 뚫리고 있는가?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를 보호해줄 역할을 국가에게 과도하게 묻고 있는 거 같다. 그리고 점점 그 영향은 커진다. 국가가 아니더라도 기술기업들이 그 역할을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런 위기감 앞에 작가는 묻고 답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