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보물과 동래부
지난 포스팅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록한 기록유산을 살펴보았다.
부산박물관에서 조선왕조실록 감상하세요!! 바로가기
여기서는 조선 왕조의 상징과 품격, 그리고 권위를 나타내는 보물을 살펴보고, 조선의 대일 외교와 문화교류를 책임진 동래부에 대해서 살펴보자.
조선 왕실의 상징과 품격
"조선의 국왕은 여러 상징물을 통해 생전과 사후의 권위와 위상을 드러냈다. 의례용 도장인 어보와 공덕을 칭송하는 글을 새긴 어책이 대표적이다. 국왕의 모습을 그린 어진은 진전에 봉안되어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였고, 국왕의 자리 뒤에 펼쳐진 일월오봉도는 최고 통치자의 존재를 나타내었다. 의례용 물품은 물론, 왕실 가족의 일상에 사용된 복식과 장신구, 가구, 도자기, 보자기 등은 조선 왕실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인용)
| <모란도 병풍과 배안상에 올려놓던 어보함과 옥책함> |
| <정조를 왕세손에 책봉하며 만든 죽책> |
"어보는 왕비나 왕세자 등의 책복명이나 업적을 칭송하고 행적을 기리는 이름 등을 새긴 의례용 도장이며, 어책은 해당 의례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기록한 책이다."(인용)
| <정조를 왕세손에 책봉하며 제작한 옥인> |
| <정조가 받은 '효손'은인과 함> |
| <단종과 정순왕후에게 올리며 제작한 옥책> |
"왕과 사는 남자" 영화의 영향인지 이 옥책앞에서 발길이 머무는 관람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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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 임금의 초상> |
"어진은 국왕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나라의 가장 존귀한 존재인 국왕의 초상이기에 도화선 화원 가운데 인물화를 가장 잘 그리는 이를 특별히 선발해 제작했다. 완성된 어진은 국왕의 생전에는 봉안처에, 사후에는 진전에 봉안하여 관리하였다. 어진은 살아 있는 국왕과 동일한 위상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에 따라 어진을 이동할 때는 국왕의 행차와 마찬가지로 의장을 갖추었으며, 어진을 제작, 보수하거나 봉안할 때는 항상 일월오봉도와 함께 모셔졌다."(인용)
안타까운 것은 조선은 왕의 모습을 담은 수많은 어진을 제작하였다고 하는데, 잇따른 전란과 특히 6.25전쟁 후 1954년 부산 대화재를 거치면서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왕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6.25전쟁 시 48점의 어진과 왕실 유물들이 부산으로 이송되었는데, 휴전 이후에도 서울로 환수되지 못하고 고 부산 동광동의 국립국악원 창고에 임시 보관중이었다가 1954년 12월 10일 새벽에 일어난 화재와 강풍 때문에 소실 되었다고 한다. 어진 48점 중 45점이 불탔다. 영조 어진 2점과 철종 어진 1점이다. 남아 있는 이 3점의 초상이 모두 부산박물관에 이번에 전시되었으니 귀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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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종 임금 초상(좌)와 영조의 20세 연잉군 시절의 모습(우)> |
| <왕이 머무는 공간의 완성, 일월오봉도> |
| <동궐을 그린 그림> |
"동궐도는 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경을 정밀하게 담아낸 궁궐 그림이다."(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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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 도자기> |
당대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궁중 도자기. 청화백자는 왕실의 권위와 화려함을 보여주고 백자 항아리와 달항아리는 담백함과 소박함을 보여준다. 도자기를 보고 있으면 뭔가 풍요롭고 넉넉한 느낌이 든다.
조선의 창, 동래부
"조선의 남쪽 관문 동래부는 외부 세계를 향해 열린 창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동래부를 통해 일본과 관계를 회복하고, 공식 사절단인 조선통신사를 파견하였다. 통신사는 영가대에서 출발해 바다를 건너 일본 에도성에 이르러 쇼군에게 국서를 전달하고 정치적 신뢰를 다녔다. 또한 활발한 문화 교류를 통해 국경을 넘어 문예의 세계를 넓혔다. 동래부와 조선통신사를 중심으로 전개된 성신의 외교는 조선 후기 200여 년간 이어진 조일 평화 관계의 기반이 되었다."(인용)
동래부는 대일 외교와 무역을 보는 창구로서 엄격히 제한받으며 독점적으로 대일 외교권을 가진 요충지다.
| <동래부사가 일본 사신을 맞이하는 장면을 그린 병풍> |
| <조선통신사가 탄 배와 행렬 그림> |
| <일본으로부터 받은 금병풍> |
| <조선통신사와 후지산을 그린 접시> |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 바로가기
나가는 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를 기념하여 부산박물관에서 준비한 "조선의 기록과 문화, 만세에 전하노니> 알차고 뜻깊은 전시였다. 부산에서 보기 힘든 보물, 유네스코 유산이 한 자리에 모여 있어서 배움의 지경을 넓힐 수 있었다. 동시에 우리 보물을 넘어 세계의 보물이 된 이런 유산들이 자랑스럽다.
전시는 총 3부의 주제로 이루어졌다. 기록와 보물과 동래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등 방대한 기록물을 보며 역사를 정직하게 쓰고 나가는 선조들의 지혜를 발견하며, 그 기록으로 말미암아 후대가 선대를 이해하고 우리 역사를 재구성하는 모든 것에 있어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얼마나 꼼꼼히, 그리고 자세히 적어내려갔는가? 이 블로그도 하나의 기록이다.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여러 상징물인 보물도 부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유물이다. 화려하지만 때론 소박하고, 웅장하면서 동시에 세밀한 보물들을 보면서 당시 왕의 권위와 위엄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게 되었다. 임금의 초상화가 대부분 소실되었다 것이 안타깝다. 유산은 정말 소중히 보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래부는 부산의 역사 가운데 일부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다시 회복하면서 어떤 정치적, 문화적 교류가 있었는지 보았다. 당시 외교도 오늘날의 외교와 다름 없음을 알게 되었다.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다. 개방하고 교류해야 한다. 참고로 부산박물관 2층에 올라가면 임진왜란으로 인해 부산이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생생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기에 그것도 아울러 감상하면 임진왜란 전후를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 덕분에 부산이 다양한 행사로 들썩이고 있다. 우리 문화유산이 더 세계에 자랑스럽게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요즘 외국인들이 부산에 많이 온다고 한다. 이 기회에 한국과 부산을 더 잘 알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다만 부산박물관이 협소하다. 주차장도 그렇고 전시실 자체도 부산이라는 위상에 맞지 않게 작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규모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제언해보고 싶다. 유익한 박물관 관람이었다. 이번 여름 부산에서 보기 힘든 유물을 모두 감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