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 김기진의 『청년 김옥균』을 읽고

 개화의 꿈과 좌절, 그리고 고독한 혁명가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감명 깊게 읽고, 그가 쓴 글을 더 읽어 보기로 했다. 그의 필력과 독특한 문체가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를 자기 나름대로 해설하는 부분이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다. 

그의 책 가운데『항우와 유방』을 구해보고자 했다. 예스24에 종이책은 있지만, 전자도서로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런 류의 소설책을 주로 전자도서로 읽는 나로서는 선뜻 종이책을 구매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다가 팔봉 김기진의 초한지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전자책으로 말이다. 

잠시 시바 료타로는 내려놓고, 팔봉 김기진의 초한지를 구매했다. 그러면서 팔봉이 『청년 김옥균』이라는 글도 동아일보에 연재를 했었고, 그것이 책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료마가 스쳐 지나갔다. 

'료마'와 '김옥균'!! 이 거대한 역사적 인물을 비교해 보고 싶었다. 다른 듯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닮은 두 인물. 가슴이 두근거림으로 이 책을 구매하고 펼쳐보았다. 이 책은 예외적으로 종이책으로 구매했다. 전자책이 없더라. 하지만, 단 권이라 큰 고민은 없었다. 초한지는 나중에 보자. 

김옥균
1882년 일본에서 김옥균

카프(KAPF)문학의 거두가 그린 혁명가 김옥균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을 이끌었던 카프의 거두이자 평론가인 팔봉 김기진은 문학 평론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는 역사소설에서도 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청년 김옥균』은 조선 말기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개화 운동을 이끌었던 청년 김옥균의 고뇌와 혁명적 이상, 그리고 시대적 한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역사의 중심에 선 청년, 김옥균의 등장

조선 말기,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시기 낡은 제도와 청나라 사대주의 사상에 갇혀 있던 조선을 깨우고자 젊은 개화파 인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 중심에 김옥균이 있었다. 그는 단순히 권력을 탐했던 정치가라기보다는, 세계 정세의 흐름을 읽고 조선이 나아갈 길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선구자에 가까웠다. 

팔봉은 이 책에서 김옥균이 지녔던 개혁사상과 열정과 그의 이상을 생생하게 복원해 낸다. 세상과 마치 담을 쌓고 고립된 조선 사회를 뒤흔들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던 그의 도전 사상을 팔봉은 치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읽는 내내 답답함과 동시에 이 청년들에게 기대를 갖는 소망이 아울러 혼재했다. 물론 역사의 결말은 알고 있지만, 

개화파의 고뇌와 개혁의 꿈

잘 알다시피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막을 내렸고, 그로 인해 김옥균은 역사의 죄인으로 몰려 파란만장한 망명 생활과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소설에서는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는 장면까지만 나와 있다. 원래는 그 후반부까지 계획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나오지 않았다. 

개혁을 이루기 위해 전개되는 과정이 숨 막히게 그려져 있다. 읽는 내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개혁이 단 삼일 만에 어이없게 끝나면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위기감에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안타까움이 든다. 분하고 아쉽고, 속상하다. 

팔봉의 묘사가 속도감 있게 이 사건을 전개해 나가며 흡입력 있게 독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한다. 주변의 거센 수구파들의 세력 속에서 신문물을 배우고 일본 등 외국의 발전상을 목격하면서 느꼈던 충격과 좌절, 그리고 이를 조선에 적용하려 뼈를 깎는 각오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역사의 빈공간을 채우는 역사소설

역사는 소설 같고, 소설은 역사 같다. 갑신정변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접하면서 말 그대로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공간과 시간을 작가가 마치 그곳에 있던 것과 같이 채워 넣는다. 개혁파 동지들의 대화 속에서 조선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치밀고, 우정총국의 사건이 진행될 때는 긴박감으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다. 개혁이 잠시나마 성공했을 때는 작은 희망을 품게 하고, 삼일 만에 막이 내리고 동지들이 하나둘 쓰러져가며 도망자가 되는 신세로 전락했을 때는 울분이 든다. 

우리는 사료로 역사를 이해하지만, 소설은 그 사료에 생명력과 현장감을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역사를 채워준다.  

팔봉이 평가하는 갑신정변의 실패이유

팔봉은 이 책 말미에 갑신정변이 왜 실패했는지 몇 가지 이유를 등장인물의 대화 속에서 평가하고 있다. 먼저 백성들이 지지하지 않았다. 역사는 소수가 만들어 간다고 하지만, 또 대중의 지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개화파는 백성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 아니 백성들은 개화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개화가 왜 필요한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백성들의 작중에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들의 인식이 드러난다. 갑신정변은 정치적인 난일 뿐이다. 그들이 왜 이런 사건을 일으키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역적일 뿐이다. 

다음으론 일본에 너무 의지한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소설 첫 부분에 등장한다. 김옥균이 일본에서 돈을 빌리려 하지만 오히려 조롱과 훼방만 당하고 거의 빈손으로 고국에 돌아온다. 그때부터 일본은 믿을 상대가 못 된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일본공사의 변덕스러움은 소설 내내 나타난다. 이런 자에게 병력과 돈을 의지하고 개혁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오판이다. 일본은 개화파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을 돕지 않는다. 너무 의존했다. 

수구세력과 청나라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 했다. 앞서 일본이 우리를 도울 것이라는 것은 과대평가라면 이번에는 반대다. 수구세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견고했고, 청나라는 여전히 막강했다. 프랑스와 청나라의 전쟁으로 인해 청나라의 힘이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리고 수구세력을 일거에 제거하지 못했기에 그들이 청나라를 너무 쉽게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준비되지 못한 개화파의 모습도 보인다. 끝까지 고종을 그들이 유리한 곳에 보호하고 있어야 했는데, 너무 쉽게 고종을 북묘로 옮기게 되었다. 그럼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청군과 싸우게 되었다. 이것이 너무 뼈아픈 실수다. 

청나라와 전투 준비가 너무 허술했다. 조선군의 무기는 얼마나 관리가 안 됐는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개화파는 제대로 무기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위와 같은 이유가 팔봉이 평가하는 갑신정변의 실패 이유다. 이것을 소설 속에 녹아내렸다. 개혁파는 이상은 높았지만 준비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며, 순간순간 대응하는 방식으로 일들이 진행되었다. 소설 속에서 그런 안타까움이 물씬 풍겨 나온다. 

사카모토 료마와 김옥균

최근 읽은 역사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다. 자연히 두 인물이 비교가 된다. 

사카모토 료마는 철저히 실용주의적인 인물이다. '삿초 동맹' 같은 극적인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면모를 보인다. 무력보다는 실리와 소통을 통해 목표한 바를 이룬다. 그 결과 '대정봉환'을 만들어냈다. 

반면 김옥균은 조선의 완고한 수구세력이나 사대주의의 구조를 단기간에 척결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무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지지 기반이 너무 약했고, 외부 세력의 힘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실패를 맞는다. 

료마는 중재자로서 소프트웨어적인 연합과 합의로 정치적인 결론을 이끌어 냈다면, 김옥균은 핵심 리더로서 하드웨어를 바꾸려고 했다. 

김옥균은 당대 최고의 천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조금 더 정교했으면 어땠을까? 조금 더 치밀했으면 어땠을까? 조금 더 준비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메이지유신을 태어나게 한 영웅 료마처럼, 갑신유신의 태동자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김옥균이 너무 안타깝다. 그만큼 시대가 급박했겠지. 개혁파의 처절한 몸부림이 소설을 통해 지금도 외롭게 외쳐지는 거 같다. 

나가면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가장 아쉬운 장면이 갑신정변이다. 이때 성공했더라면 조선의 운명이 바뀌지 않았을까? 그럼 한반도의 근현대사는 어떻게 바뀌게 되었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이 순간이 너무 안타깝다. 우리가 안고 있는 근현대사의 상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에 비교한 료마와 비교하면서 읽어보니 김옥균이라는 인물이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물론 작가들의 펜에서 묘사되는 인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결국 성공한 이와 실패한 이. 이렇게 나뉘어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에 덩어리를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마 시대상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이것을 극복하려는 젊은 청년들의 의기가 피가 끓어오르듯 토해진다. 성공했더라면, 성공했더라면......

이 소설은 1934년에 처음 동아일보에 연재되고 몇 번 개정이 있고, 현재에 이르렀다. 당연히 고어가 많고 한자도 많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달라서 읽는 데에 약간의 어려움은 있지만, 작가 특유의 속도감 있는 집필로 이해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숨 막히는 역사 현장 속으로 일독을 권한다. 

김기진 청년 김옥균
팔봉 김기진의 청년 김옥균,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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